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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해지하시겠습니까?" 구독경제의 '덫', 사라지지 않는 다크패턴 [이인석의 공정세상]
2025.05.20. 한국경제에 법무법인 YK 이인석 대표변호사의 기고문이 게재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영상 콘텐츠부터 음악, 소프트웨어, 심지어 면도날이나 영양제, 꽃다발까지... 매달 일정 금액을 내면 원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구독경제는 이미 우리 일상 깊숙이 들어와 새로운 소비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필요할 때만 쓰고, 원할 때 언제든 해지하세요!"라는 달콤한 속삭임은 넘쳐나는 정보와 상품 속에서 '결정 장애'를 겪는 현대인들에게 똑똑하고 합리적인 소비 방식으로 여겨지기에 충분했다. 기업들 역시 안정적인 수익 확보와 고객 데이터 축적이라는 매력에 빠져 앞다퉈 구독 모델을 도입하고 있다.
특히 그 편리함에 발을 들였던 소비자가 이제는 그만 이용하고 싶어 출구를 찾을 때, 그 덫은 비로소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다. 바로 '다크패턴(Dark Pattern)', 그중에서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해지 방해 술수들이다.
다크패턴이란 사용자의 특정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교묘하게 설계된 사용자 인터페이스(UI)나 사용자 경험(UX) 디자인을 말한다. 잘 짜인 각본처럼, 사용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업이 원하는 방향으로 선택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해지 방해 다크패턴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기업 입장에서는 고객 이탈(Churn Rate)을 줄이는 것이 곧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한 명의 가입자라도 더 오래 붙잡아 두려는 유혹은 때로는 공정함이나 고객 만족이라는 가치보다 우선시된다.
일단 구독 관계가 형성되면 소비자는 일정 부분 관성에 젖게 된다. 해지 과정이 조금 번거롭더라도 '나중에 해야지'라며 미루거나, 소액이니 괜찮겠지 하며 방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바로 이러한 소비자의 심리적 허점과 인지적 부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이다.
다크패턴의 폐해를 이미 인식한 해외에서는 규제를 활발하게 강화 중이다. 유럽연합(EU)은 디지털 서비스법(DSA) 등을 통해 기만적인 인터페이스 설계를 금지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클릭 한 번으로 해지(One-Click Cancellation)' 기능을 의무화했다. 국내에서도 공정거래위원회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등 대응하고 있지만 빠르게 진화하는 기술과 디자인 수법을 규제가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기업의 혁신적인 서비스 개발 노력이나 창의적인 마케팅 전략을 위축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혁신과 창의가 소비자를 기만하거나 부당하게 옭아매는 방향으로 악용되어서는 곤란하다.
202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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